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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행보 속의 고립과 딜레마(12월호)

작성자: nkorea

조회: 14832 등록일: 2017-11-22

‘마이웨이’ 행보 속의 고립과 딜레마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국제적 고립, 물리적 차단 이상의 상실  고립(isolation), 기만(deception), ‘마이웨이’(my way)는 북한 외교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사이의 국제적 고립은 북한으로 하여금 외교적 좌절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세계화로 인한 정보의 확산과 국가 간 상호의존 증대로부터 북한을 절연(insulation)시켜 준 동력이기도 했다. 외부의 시각에서는 불투명한 정보로 인해 흔히 ‘전략적 기만’을 활용한다고 지적되기도 했지만, 상대방이 수(手)를 읽기 어렵다는 점은 나름의 ‘벼랑끝 전술’을 활용하는데에는 매우 유용하였다. ‘마이웨이’ 행보 속에서 북한은 과거 중·소의 전략적 경쟁을 자기 이익에 맞게 활용해 왔으며, 이를 통해 오히려 체제 생존력을 높여왔다. 2017년에도 북한의 이러한 행태는 예외 없이 유지되었으며, 오히려 그 색채는 더욱 뚜렷해졌다. 문제는 그게 반드시 북한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2017년중 북한은 ‘고립’과 관련하여 두 가지의 중요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첫 번째는 2월 13일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에 의한 것이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으로 밝혀진 2명의 용의자가 체포되어 현재도 재판이 진행중이고, 1명의 북한인(리정철)이 암살 관여 혐의로 체포 되었다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 후 추방되었으며, 4명의 북한인이 암살을 사주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말레이시아는 북한과의 비자면제협정을 파기하고 강 철 북한대사를 추방하였으며, 북한 역시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북한주재 말레이시아 대사를 추방하는 한편 외교관을 포함한 말레이시아인 9명을 사실상 억류하기도 하였다. 사건 초반에는 북한과 말레이시아 사이에서 단교(斷交)까지 거론되었으나, 현재로서는 말레이시아가 평양주재 대사관을 폐쇄키로 하는 선에서 파장이 정리될 것으로 판단된다.    비록 단교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한 북한의 대외적 이미지 실추는 이미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의 위치를 감안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여길 것이 못 된다. 김정남 암살에 화학무기에 주로 사용되는 맹독성 작용제 ‘VX’가 검출됨으로써 대량살상무기 확산국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화 되었으며, 2008년 가까스로 탈피한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다시 등재될지도 모르는 근거를 제공하였다. 더욱이, 90년대 이후 지속된 국제적 고립 속에서도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동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들 전체에서 부정적 대북여론이 조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하였다. 비록, 말레이시아와의 단교 사태를 피함으로써 결정적인 타격은 회피하였다고 하더라도 ASEAN 회원국들로부터 상실한 신뢰는 쉽게 회복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타격은 잇단 핵·미사일 능력 시위로 인한 국제적 제재로 인한 것이다. 2017년에만 세 차례의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안(2356, 2371, 2375)이 통과된 가운데 미얀마, 베트남, 멕시코, 페루, 쿠웨이트, 스페인, 포르투갈, 우간다 등이 자국에 주재하는 북한 외교관과 주재관, 그리고 상사 대표들을 추방하였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외교관을 추방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인에 대한 신규 비자발급 및 신규 사업허가 중지, 그리고 대사급 외교관계의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유럽연합(EU)은 북한 노동자 수용 금지 등의 자체 대북제재안을 2017년 하반기부터 검토하기 시작했다. ASEAN 국가뿐만 아니라, 북한이 2000년대 이후 외교력을 집중한 EU, 전통적 활동무대인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의 외교거점이 전방위적인 타격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국제적 고립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북한의 입장에서 이러한 조치가 체제 내구력을 심각히 걱정할 만한 사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라는 젊은 지도자의 시대를 맞아 ‘핵강국’으로서 확장해 나가려고 했던 북한의 국제적 위신이 심각하게 실추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과거와는 달리 ‘고립’의 반대급부로 자위할 수 있는 ‘절연’의 효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북한과의 관계 단절이나 축소를 택한 국가들에게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절연’의 효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외화수입이나 외교기반의 상실이 있을 뿐이다. 여전한 벼랑끝 전술, 그러나 만만치 않은 상대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을 이용한 ‘벼랑끝 전술’은 2017년에 오히려 더욱 확대되었다. 북한은 2017년 9월까지만 총 15차례의 미사일 발사 실험과 1차례의 추가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이러한 능력시위의 1차적 타겟은 미국이었으며, 이를 통해 평양은 미국내에서 ‘제재무용론’을 이끌어내는 한편, 워싱턴이 ‘핵보유국 북한’이라는 현실을 어쩔 수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고자 하였을 것이다. 특히, 북한은 미사일 발사실험 중 11차례, 그리고 1차례의 추가 핵실험을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 집중시켰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정부가 모두 임기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정책조율상의 난맥상을 유도함으로써 보다 유리한 입지에서의 협상을 노렸을 것이다.    과거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였다. 주기적으로 대화 국면과 경색 국면을 교차함으로써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자신들의 행위로 인한 ‘한반도 위기론’을 부각함으로써 결정적인 대북조치(군사적 선택과 같은)를 오히려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7년 북한이 받아 든 손익계산서는 현재로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할 듯하다. 이제 평양으로서도 과거와는 달리 자신들의 일탈행위에 대해 발 빠른 국제제재가 따라붙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이제 평양의 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2017년의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안 2371호와 2375호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이후 가장 신속하게 결의된 제재에 속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더욱 곤혹스러울 수 있는 것은 거듭된 핵·미사일 능력 시위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달성하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일정수준의 국제제재를 견디고 확실한 핵위력과 미사일 성능을 시현하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수용되었던 사례, 즉 인도와 파키스탄이 걸어왔던 길을 따랐다. 북한이 2017년에 보여준 능력은 이 두 사례에 비추어 결코 떨어진다고 볼 수 없는 길이다. 최소 50kt 이상의 핵폭발 능력과 3,000km 이상의 미사일 비거리를 과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면, 이제 북한은 전혀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한다, 그 최종 목적지가 ‘핵보유국’일지 자신들의 파멸일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평양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를 결정할 상대, 즉 미국의 행정부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중 평양과 워싱턴이 주고받은 수사전(修辭戰)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내까지도 경악시킬 수 있는 발언을 쏟아내었다. ‘화염과 분노(fire & fury)’, ‘완전파괴(totally destroy)’ 등은 그 이전의 미국 행정부가 전달한 대북 메시지와는 강도와 심각성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을 고려할 때, 이를 부시나 오바마 행정부의 그것처럼 단순한 엄포의 수준으로만 해석하기도 곤란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제 북한 자체도 미국에 대한 ‘정보 모호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적절히 명분을 쌓고 대화나 협상에 복귀하려고 해도, 그동안 대외적으로 공언한 내용들이나 김정은의 자기존대(自己尊大)를 감안할 때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은 월간 북한 2017년 12월호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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